화성학의 중요성, 전자음악계에서는 꺼내면 바로 갑론을박이 펼쳐지던 시절이 있었다.
요새는 배워놓으면 좋다, 자신이 잘하고 싶으면 배우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의견이 대세인 듯하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특히 요새 동인음악은 복잡한 화성보단 화려한 사운드 디자인이 주류인 듯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입시작곡을 1년간 배웠었고, 그때 얻은 지식이 나에게는 좋은 파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화성학이 필요한가 아닌가를 따지려면 먼저 화성학은 무엇인가? 를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위키에 따르면 화음을 연속시키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화성학이라 지칭하는데,
여느 음악 이론이 그렇듯 기초적으로 "이게 좋은 건 알겠는데 좋은 이유가 뭘까?"에서 시작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듣기 좋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좋은 이유를 탐구하는 학문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키의 내용과 내 생각을 이어 붙여보자면 화성학이란
시간에 따라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화음 간의 유기성에서 오는 기분 좋음을 분석하는 것이 되겠다.
화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려면 먼저 화성의 구성음이 될 음정을 이야기해야 되겠다... 만은
왜 12음으로 나누어졌으며 어째서 음마다 2^(1/12)의 진동수를 가지게 되었는지, 메이저 스케일과 마이너 스케일이 정해진 경위까지 얘기하면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하고,
일단은 가장 기초적인 C메이저 스케일에서 한번 놀아보도록 하자.
우리는 스케일에서 2칸씩 떨어트려 연속된 3개의 음을 선택해 만든 화음을 3화음, Triads라고 칭한다.
예시를 몇 가지 들자면 도미솔, 레파라, 솔시레 등이 있겠다.
그리고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음을 1음, 3음, 5음이라 칭한다 (두칸씩 떨어졌으니 [1], 2, [3], 4, [5]음이라는 뜻이다) .
1음은 해당 화음의 기준점이 되는 음정이고,
3음은 해당 화음의 장조, 단조를 나타내주고,
5음은 해당 화음의 뉘앙스를 나타내준다.
그렇기에 1음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3음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5음은 앞선 두 음보다는 중요성이 떨어진다. 이 사실을 잘 기억해 두자.
그러면 화음에 대해서 얘기를 마쳤으니 다수의 화음이 연속해서 등장할 때의 경우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가 알고 있는 진행이 있다. 바로 솔시레-도미솔 진행이다.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쫙 긁어서 이 음악은 C메이저예요~라는 단서를 주고서 솔시레를 치면,
다음에 무언가가, 무언가가 나올 것만 같아...! 하는 긴장감이 들다가
도미솔이 나오는 순간 아~이거지 하는 해소감이 든다. 왜일까?
솔시레의 구성음에는 "시"가 있다. 이 친구는 "도"라는 이 음악 안에서 절대적인 왕좌를 지키고 있는 친구 바로 옆에 매달려 있는 금붕어 똥 같은 음이다. 너무나 중요하여 이전에 등장했던 주변 모든 음들을 끌어당기는 블랙홀과 같다.
그러므로 "시"는 자연스레 "도"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해방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미솔"시", 솔"시"레, "시"레파 전부 파라"도", 라"도"미, "도"미솔로 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어째서 솔시레-도미솔이 가장 해방감이 큰 거죠?
여기서 음정 간의 중요성이 나올 수 있다.
미솔"시"의 시는 5음이라 해당 화음 안에서 너무 중요도가 떨어지고,
"시"레파의 시는 1음이라 너무 중요한 위치에 불안한 음이 위치해 에너지가 약하다.
목적지가 되는 라"도"미와 파라"도"는 "도"미솔에 비해 도의 중요도가 떨어진다.
나는 화성학을 배웠을 때 클래식 작곡을 배웠다. 4개의 음정으로 이루어진 화음들을 연속적으로 배치해 좋은 흐름을 만들어 내는 연습을 계속해왔는데, 그때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바로는
"이전 화성의 구성음이 이동하여 다음 화성의 구성음이 된다"였다.
솔시레-도미솔의 경우에는 시->도의 경향성이 제일 강하고, 솔은 솔로, 레는 미로 가려는 경향이 있다.
뒤의 2개의 경우에는 지키면 좋지만 이걸 지키다간 오히려 표현에 제약이 생기지만,
시->도만큼은 여겨서는 안 될 철칙이었다.
아니 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세요? 전 시에서 미로 점프할 건데요?
하지만 직접 시도해 보면 시->도 이동이 없을 때 보다 있는 편이 훨씬 듣기 좋다는 걸 알 수 있다.
매우 간단하게 화성학을 훑어 봄으로써 화음이 연속될 때 기분이 좋은 이유를 설명하는 학문이 화성학이라는 건 알았다.
그럼 왜 화성학을 배워야 하나 질문하면 "배우면 좋고~아님 말고~"라는 애매한 답변이 돌아올까?
그건 바로 동인 음악, 더 나아가서는 전자음악의 특수성을 들 수 있겠다.
현재의 전자음악은 시간에 따라 유기적인 흐름이 구성된 화성보다는 사운드 자체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러 가지 이펙터의 수치를 시간에 따라 이동시킴으로써 들리는 소리에 변화를 주고, 그런 동적인 소리에서 오는 변화 그 자체(긴장) 및 변화의 반복(이완)에서 오는 쾌감을 더욱 중시한다.
당장 단순한 소리에도 오토메이션을 걸어서 동적인 느낌을 추구하는 게 오늘날의 전자음악이 아니던가.
이미 여기서 긴장감과 해소감을 얻어냄으로써 화성에서의 긴장감과 해소감을 얻을 필요성이 적어진다.
그리고 악기 자체의 크기도 커졌다. 슈퍼쏘우라 불리는 소리가 있는데,
배음이 엄청 풍성한 톱날파를 위 아래로 옥타브를 겹치고
파형을 복사한 후 각 파형의 주파수를 미세하게 틀어서 좌우로도 엄청 벌려놓은,
그야말로 음역대의 고저와 너비를 모두 잡는 완전 돼지 소리가 있다.
그야말로 풍성함의 대명사가 되어 장르를 불문하고 음악에 너비감이 필요하다면 어지간한 전자음악에서는 다 쓴다.
이미 옥타브를 몇 개는 넘나드는 음을 또다시 옥타브를 넘나드는 미디를 찍어서 소리를 내는데,
구성음의 이동? 앞 뒤 관계성? 어느 음정이 어디로 이동한다라는 감각 자체가 무뎌진다.
"도" 음정이 이전 코드의 "시" 음정 근처에 있지 않고 한 옥타브 위나 아래에 있어도, 해소감이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실제로 화성학을 배우지 않고도 지금 동인 음악, 더 나아가서는 전자 음악계에서 대가가 된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방배동호랑이님은 악보도 아예 볼 줄 모른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트곡 제조기라 불리지 않으셨는가?
사실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원인을 모른다 하더라도 좋은 결과물은 나올 수 있는 법이다.
그럼 배우면 좋다!라는 이유는 뭘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내가 아직 들어보지 않은 코드진행도 이론을 통해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겠다.
이 음정은 여기로 이동하는 게 정배지만, 저기로도 이동할 수 있겠구나! 하고 평소에 계속 듣던 진행에서 벗어나 생소한 경험을 청취자에게 줄 수 있다는 점이 또 자신만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음악의 이야기와 관련되어서 이 부분에서 위기감을 조성하거나 해방감을 줄 때, 불안정하거나 안정적인 진행을 의도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그저 감각과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선대가 쌓아놓은 지식을 토대로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다.
결국, 화성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별 것 없다.
자신이 모자라다 느끼면 배우는 것이고,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이론을 몰라도 내가 의도한 바를 표현할 수 있다면 배우지 않아도 된다.
혹자는 말했다. "자신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보았기에 더 멀리 볼 수 있었다."
선대부터 쌓아온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토대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도록 탐구하는 게 학문의 본질 아닌가.
나는 화성학을 배웠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을 토대로 배우지 않았다면 낼 수 없었던 결과물들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
이따금씩 화성학 대신 사운드 디자인을 배울걸 할 때도 있었지만,
감성적인 분위기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사운드가 세련되기보다 코드에서 오는 해방감을 중요시하다 보니 그래도 내 음악의 정체성 중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도 있다
화성학을 배우는 데에 고민이 되는 포인트는 누가 뭐래도 드는 노력과 시간일 것이다. 가성비가 안 나온다는 얘기이다.
당장에 사운드 퀄리티를 올려서 얼핏 들었을 때 꽤 괜찮은데? 싶은 노래를 만드는 쪽이 더 빠르긴 하다.
하지만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가장 효과적인 건 화성 진행이라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음악은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생각을 한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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