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을 하면서 늘 마음에 담아두는 몇 가지 생각들이 있다.
이게 스타일인지 철학인지 두 단어가 이 상황에선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어쨌든...
곡을 쓰면서 들었을 때 스토리가 떠오르는 하나의 이야기 같은 음악이 정말 좋다고 생각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눈을 감고 들을 때 눈꺼풀로 가려진 새카만 도화지 위에 심상이 또렷하게 그려지는 곡이 좋은 노래라고 항상 생각하고 작곡을 하고 있다.
가사라는 언어가 이런 이미지를 극대화 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기는 한다만, 언제나 보컬을 부를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또 내가 그려낸 이미지에 보컬의 자리가 없을때도 있다.
멜로디의 음색과 분위기, 드럼의 사운드와 그루브, FX들로 이미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피아노를 쓸 때 리버브를 깔아서 이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드라이한 상태에서도 이쁜 소리를 만든 후에 리버브는 양념처럼 쓰라고 혹자는 말했었다. 대충 비슷한 맥락이다.
모티브가 매력적이고 Inst가 수려하다면 그 위에 보컬을 올렸을 때 얼마나 더 이뻐질 수 있겠는가.
이런 테마성은 특히 요즘의 동인 음악, 리듬게임 씬에서 더더욱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새는 샘플팩, 프리셋과 튜토리얼 영상, 정보 영상들이 워낙에 잘 나오는 추세라 사운드를 기깔나게 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보인다.
결국 사운드 퀄리티가 상향평준화 되었다면 승부를 볼 수 있는, 단순이 소리만 기깔나는 음악과 대비되어 내 음악을 대중들이 골라 줄 매력점이 바로 이 테마를 그려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클럽같은 곳에서 틀 음악이라면 대중을 소리로 압도하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 될 것이다. 나도 그런 음악들을 종종 듣기도 하고. 장르 음악을 좋아해서 테마로 가슴을 울리는 것 보다 사운드로 귀를 즐겁게 만드는 곡들을 몇 번 써보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 나는 테마가 있는 음악이 좋다.
내가 만든 음악중에선 Mango 시리즈, Meteor Shower Highway, Plastic Heart, Earendel, Sledding with you 같은 음악들이 만들고 나서도 오랫동안 그래도 좋구나~싶은 생각이 든다.
사운드나 믹싱 측면에선 당연히 아쉽지만, 그래도 역시 음악이라는 건 멜로디와 테마가 중요하구나 느낀다.
웃으며 눈물을 흘리는 표정,
서브컬쳐 문화를 향유하는 여러분들이라면 바로 이해가 되었을 것 이다.
나도 밝지만 어딘가 아련한 그런 멜로디와 화성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 등에서도 매력있는 등장인물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입체적인 인물이 매력있다고 했던가.
대놓고 해피 빡! 대놓고 여기서 우셔야 합니다 빡! 은 뭔가 맛이 없달까...쉽게 물리는 맛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멜로디가 이론적으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나도 이때까지 들어온 음악 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차용하는 그런 거겠지. 멜로디의 작법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도 없고.
화성적인 측면에선 반음계 진행, 멜랑콜리한 느낌을 주는 진행들이 분명히 있다. 자주 즐겨쓰는 반음계 병진행, 차용 코드, (반)감7화음 등이 확실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한 코드부터 시작해서 코드의 구성음을 하나씩 옮겨보면서 괜찮은 진행을 찾아보면 꽤나 재밌고 맛있는 코드진행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니 저러니 길게 썼지만 역시 좋은 음악이 뭐겠는가, 자꾸 듣고만 싶어지는 음악일 것이다.
나는 이야기가 있고 감동이 있으면서 그러면서 소리는 시원하게 뻗어나가서 넓게 펼쳐지는 음악이 좋다.
그런 특징들을 내 작품에 담아내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는 중이다.
창작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내가 보고싶고, 내가 듣고싶고, 내가 읽고싶은 그런 걸 만들려고 창작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오랫동안 내가 원하는 음악을 어떻게 만드는지 헤메다 요즘에야 조금씩 정착이 된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곡 만들 때 마다 비로소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요새는 다른 무언가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음악에서 큰 즐거움을 얻는데, 이거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그래도 마냥 와~나 이걸 만들었어! 가 아닌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좋다~! 라는 감정을 요새 계속 느껴서 창작욕구가 뿜뿜 중이다. 앞으로 공개될 곡들이 여럿 있는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기대해도 좋을거라 장담합니다.
귀가 양쪽이 다 안들릴 때 까지 무슨일이 있어도 작곡은 계속 하지 않을까 싶다.
창작은 고통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그 고통 뒤에는 얼마나 큰 즐거움이 따르는지, 그 맛을 알면 여러분들도 아마 순식간에 빠져버리게 되지 않을까. 이건 정말 숭고하고 아름다워서 내 새끼는 남의 어떤것과도 견줄 수 없는 애정이 생긴다.
항상 여러분들이 즐기는 삶을 가지길 바랍니다.
'잡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믹싱? 마스터링? 뭐야 그게. (3) | 2024.11.05 |
---|---|
멋있는 음악과 듣고 싶은 음악은 다르다 (0) | 2024.10.29 |
화성학이 뭐길래. (0) | 2024.10.14 |
CD같은 구닥다리 물건 요즘 누가 쓰냐? (0) | 2024.10.03 |